2014년 10월 4일 토요일

기본소득이 그리는 미래


* <청년, 기본소득, 복지국가 토론회>의 토론문으로 발표된 글 입니다.

0. 소개

  이 발제문은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가 어떠한 사회를 꿈꾸며 활동을 해나가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가장 먼 미래까지 책임져야 할 청년(youth)으로서 우리는, 현재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동시에, 미래를 일구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는 해결책을 바랍니다. 기본소득은 사회주의나, 자본주의, 민주주의 등과 동등하게 배치될 수 있는 큰 사회상은 아닙니다.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금액을 매 달 현금으로 지급하자”는 명료한 한 가지 아이디어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양한 문제들에 연결시킬 수 있는 스위치와도 같고 따라서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 관여해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미래사회와 관련된 몇 가지 결정적인 이슈들과 기본소득을 연결 지을 때 그려질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1. 미래: 기후변화, 인구고령화, 기술의 발전

  21세기를 변화시킬 국가적 단위의 정책제안이라면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기후변화 및 에너지자원 고갈이라는 생태문제와 인구고령화가 바로 그것입니다. ‘피크오일’이라는 단어로 대변되는 화석연료의 고갈은 대량생산의 비전을 꺼버렸고, 탄소배출로 인한 기후변화는 계속 진행되어 이미 특정 지역에서는 높아진 해수면 높이에 주거를 위협받는 경우가 생기고 있습니다.

  인구고령화는 두 세기에 걸쳐 진행되어온 기대수명의 연장과 선진국들에서 나타나는 출산률 저하로 인해 이미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경우 노후의 사회적 안전망이 확실하지 않은 채로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고, 생산가능인구는 줄어들며 낮은 고용률까지 계속되면서 청년세대의 부담이 높아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기술의 발전이 미래를 구원할 수는 없을까요? 전문가들은 기술발전이 노동력의 상당부분을 대체할만한 생산력과 정밀함을 제공하고, IT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세계화 및 정보화의 추세가 ‘공유’를 활성화 시킬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큰 그림으로 보면 자원의 절약이며 인류의 발전이지만, 우리의 생계가 임금노동에 저당 잡혀 있는 이상, 이는 일자리와 기존 시장을 위협하는 양날의 칼로 다가옵니다. 최근 적법성을 갖고 이슈가 되고 있는 우버나, 기존 시장을 위협할 만큼 커진 에어비앤비 같은 서비스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상에 기술한 경향들은 확률적으로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2. 자유로운 개인과 사회 역량의 증진

  너무 큰 문제의식은 무기력을 불러옵니다. 하지만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주체는 인간입니다. 우리에게는 인간의, 개개인의 역량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동시에 사회의 역량을 키워 공통의 문제에 대한 해결능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기본소득이 제시할 수 있는 사회적 비전은 다양하고, 그만큼 불확실하지만, 개인들의 자유를 증진시킬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합니다. 개인은 노동시장과 소비시장에 대해 기본적인 협상력을 갖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방종’이 우려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자유의 권리와 책임이라는 양면을 지닌 ‘자율성’의 강화와 그로 인한 개인과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2.1 노동의 자유

  기본소득은 생계에 충분한 금액을 지급함으로서 노동과 소득 간의 고리를 끊습니다. 즉, 생계를 위해, 단지 먹고 살기 위해 돈벌이에 매달릴 필요가 사라집니다. 이 말은 평생 아무 것도 안하고 놀고먹을 수 있다는 의미로 들릴 수 있지만, 그 보다는 쉴 때는 쉬면서 일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일 할 필요가 없을 때에도 의미 있게 살고 싶어 합니다) 한국은 노동시간이 가장 긴 동시에 노동생산성이 가장 낮은 나라입니다. 이제는 노동의 생산성이 아니라, 휴식의 생산성을 주목해야 합니다.

  경영학자 린다 그래튼은 일의 미래가 유연한 전문가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양질의 교육이고, 유연성을 위한 전제조건은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는 1년 이상의 장기 휴식입니다. 기본소득은 이처럼 배움과 휴식이 평생 보장되는 삶의 꼴에 잘 부합하는 정책입니다.

  무엇보다도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정부에 인증 받지 않고도 예술작업과 공공사업을 진행할 수 있으며, 돈이 되지 않는 연구사업을 진행하기도 한결 수월할 것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타인의 안전을 무시하고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모두가 꺼려하지만 사회에 꼭 필요한 3D 업종에는 지금보다 높은 임금이 책정되는 공정함이 구현될 것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 십대 때부터 무의미한 스펙경쟁에 뛰어들 필요도 없습니다. 대신 다른 부문에서 더 생산적인 경쟁이 일어날 것입니다. 더 많은 도전과 실패가 가능한 산업 생태계에서 더 자주 진정한 혁신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2.2 소비로부터의 자유와 생태사회로의 전환

  생태문제의 해결은 정부나 기업이 주도하는 엘리트 집단의 연구를 통해서만은 불가능합니다. 에너지의 소비자이자, 수요중심 에너지 정책의 알리바이인 개인들의 패러다임 변화와 삶의 변화가 동반되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노동과 소득의 고리를 끊는 것은 곧, 노동과 소비의 고리를 끊는 것과 같습니다. 삶을 외주화하고 라이프 스타일을 소비로 완성시키는 방식은 지난 세기의 대량생산(완전고용)과 대량소비의 사이클이 만들어낸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개인을 돈을 벌고 쓰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못하는 존재로 전락시키고, 초국적 기업들이 국경을 넘나들며 더 값 싼 노동력 착취로 경쟁력을 유지하도록 허락하며 막대한 양의 탄소발자국을 남긴다는 점에서 파괴적입니다. 현금지급형 복지가 이러한 소비를 부추기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 됩니다.

  돈을 많이 벌고 많이 소비하는 행복을 추구하는 삶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기본소득은 노동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고 따라서 우리에겐 충분한 시간이 생깁니다. 이제 시간을 들여 소비와는 다른, 생산적인 방식으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가족,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관계를 더 돈독히 할 시간, 새로운 제작문화를 익히고 즐길 시간, 직접 먹거리를 길러 볼 시간이 생깁니다. 소비의 즐거움은 반복되면 될 수록 결핍이 커지고 쾌락의 역치가 높아지지만 생산적인 즐거움은 하면 할 수록 더 깊은 몰입과 새로운 즐거움을 제공합니다. 또한 기본적인 자립 기술을 익힘으로서 외부 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을 높여줍니다.


3. 전제조건

  ‘돈’은 매개체 입니다. 돈의 가치는 그것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수 많은 서비스와 재화 간의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기본소득은 ‘존재 그 자체를 위한 돈’을 모두에게 지급합니다. 이때 이 ‘돈’이 모두의 존재를 긍정하며 어떤 관계의 흐름으로 흘러들어갈 것인지가 이 정책의 성패를 가를 것입니다. 극단적 상황을 가정하여, 기본소득으로 받은 돈이 모두 초국적 기업의 값싼 제품들과 대형마트로, 투기와 임대료로 흘러들어간다면 사회에 더 큰 격차와 위험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돈이 유통될 필드를 교정하고 새롭게 제시하는 작업이 동반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에서 개인의 자유를 증진시킴으로서 사회 전반의 역량이 발전하는 것을 보았다면 여기서는 국가와 지역사회라는 두 주체의 역할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3.1 공공서비스가 보장된 사회

  몇 가지 실질적인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기본소득을 받았지만 의료에 드는 돈이 천정부지로 높다면? 지금처럼 주거 임대비가 1인 가구 소득의 수채구멍인 상황에서 기본소득의 도입으로 인해 월세가 함께 큰 폭으로 오른다면? 가족 및 지인과 교류할 시간을 얻었지만 통신비와 교통비가 오른다면? 전문성을 키우고 싶은데 고등교육기관의 질이 형편없다면?
기본소득이 강조하는 자유는 ‘모두에게’, ‘조건없는’이라는 단서를 붙인다는 점에서 ‘평등’을 내포하고 있지만 기본소득만으로 안전한 삶을 보장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따라서 기본소득이 충분히 빈곤을 해소하고 개인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공공서비스 정책 패키지가 함께 논의되고 도입되어야 힐 필요가 있습니다. 이 같은 공공서비스는 현실적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보장되어야 할 것입니다.


3.2 지역사회와 시민사회의 부상

  또한 미래에는 지역사회의 존재감이 더 커져야 합니다.
우선 기본소득의 가장 바람직한 사용처는 지역입니다. 지역상권으로 흘러들어간 돈은 대기업 유보금이 아닌 이웃의 소득으로 유입되며 실물경제를 활성화 시킵니다. 지역에서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이 탄소배출을 줄인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또한 앞에서 이야기한 생산적 활동의 무대 역시 지역에서 제공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 머리를 맞댄다면, 에너지 자립 마을과 같은 전망도 세워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기존 복지담론의 주체는 복지정책을 집행하고 통제하는 큰 정부, 타협의 대상인 민간 기업들과, 납세자이자 수혜자로서의 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납세자의 역할을 해야 할 청년층이 줄어들고 수혜자인 노령인구가 늘어나면서 복지시스템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기본소득은 중앙정부 대신 지방정부 및 시민사회라는 주체를 좀 더 수월히 불러옵니다. 공공서비스의 집행자로서 중앙정부는 너무 멀고 큰 존재입니다. 시민과 소통하며 지역에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지자체가 적당합니다. 또한 그 비용부담을 모두 국가재정이 부담하는 것도 갈 수록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강도 높은 노동으로 고통받는 한국 사회복지 공무원들의 현실이 부족한 재정의 문제점을 드러냅니다.

  다행히 보육, 교육, 노인 돌봄 등 복지서비스 산업은 앞으로 성장가능성이 높은 산업들입니다. 다만 급여가 높지 않고, 이윤 중심의 수입사업이 될 경우 서비스의 질을 보장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소득의 도입이 동반 제안된다면 이러한 단점을 상쇄될 것입니다. 동시에 일자리의 매개 및 공급처로서의 지역사회가 적극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여성과 노인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입니다. 이는 청년세대의 부담을 덜며 고령화가 불러일으키는 자원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입니다.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과 같은 제 3섹터의 주체들도 주도적으로 참여할 것입니다. 기본소득은 사업체인 동시에 결사체적 사명을 띠고 있는 이 같은 조직들의 이중의 부담을 한 결 덜어주는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서구에서는 “19세기는 노예해방, 20세기는 보통선거권, 21세기는 기본소득”이라는 슬로건을 사용합니다.(한국의 근대사에는 맥락이 맞지 않지만) 매 번의 자유가 획득되는 과정이 민주주의의 학습과정입니다. 지역정치의 활성화와 함께할 때, 기본소득은 분명 가장 훌륭한 민주주의 학습의 장이 될 것입니다.


4. 나에게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

  마지막으로 던지고 싶은 질문은 ‘나에게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입니다. 기본소득은 분명 급진적인 발상이지만 그렇다고 그 도입과정까지 급진적이리란 것은 아닙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이란 질문을 통해 자신이 현 사회의 이해관계망의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 확인해보고, 각자의 입장에서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 할 때 다양한 문제들이 ‘기본소득’이라는 의제를 통해 재의미화 되며 사회를 앞으로 추동할 것입니다. 이처럼 기본소득은 다양한 문제들이 집중될 수 있는 효율적인 아젠다입니다. 우리가 기본소득에 동의할 때, 당위에 머무르던 몇몇 아젠다들이 필요의 생명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기본소득을 통해 효율적으로, 행복하고 안전한 사회로 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기본소득이 도입된 사회에서 우리는 공통의 안전을 보장받으며, ‘다양한 행복’을 추구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참고]
<일의 미래>(2012) / 린다 그래튼 / 생각연구소
<고령화 시대의 경제학>(2010) / 조지 매그너스 / 부키
<조건없이 기본소득>(2014) / 바티스트 밀롱도 / 바다출판사
<사회혁신이란 무엇이며, 왜 필요하며, 어떻게 추진하는가>(2011) / 제프 멀건 / 시대의 창
"사회복지 공무원 39% ‘고위험 스트레스군’" 2013.10.17, 시사in 3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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