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16일 토요일

7/15 올라온 조성주씨의 기본소득 반대 글을 빌미로, 진보진영에서 자주 보이는 기본소득에 대한 폄하적 레토릭에 대해


정의당 조성주 씨가 당 내에서 기본소득을 검토중이라며 자신은 이에 반대한다는 견해를 페북에 밝혔다.



스위스 국민투표, 이재명 성남시장, 김종인 더불어 민주당 대표를 거치며 기본소득이 "유행"(언젠가 버려질 거란 뜻이다)의 길을 걷기 시작한 듯한 지금, 솔직히 좀 반가운 말이다.

예컨대 올해 초 토론 자리에서 서로 다른 입장으로 만난 한 청년 활동가는 자신이 정책설계과정에 참여한 서울시 청년수당이 기본소득을 지향하고, 자신도 기본소득을 지지한다는 말을 해서 현장의 기본소득 지지자들로부터 환영 받았는데(당연히 그 뒤에 유보적 입장을 밝혔다. 딱히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기 보단... 합리적으로 보이기 위한 유보처럼 보였는데), 솔직히 논의를 무척 비생산적인 프레임 땅따먹기로 만들어버려서 좀 실망스러웠다. 그 기저에 있는 심리는 조성주 씨의 글에 너무 잘 묘사되어 있다.

<<내가 기본소득을 반대하는 이유는 기본소득의 설계자체에 큰 이견이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현재 한국의 진보진영이 기본소득을 고려하게 된 배경에 의구심이 더 강하게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정의당이 기본소득을 검토하게 된 이유도, 서로가 더 진보적이라고 경쟁해야하는 상황에 처한 진보진영 내부가 언제부턴가 기본소득에 집착하기 시작한 이유도 결국은 선명성 경쟁이나 이슈선점의 의도가 더 강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의심하고 있다. 보수정당들을 말하지 못하는(때로는 다른 진보정당은 말하지 못하는) 더 진보적이고 급진적인 것 처럼 보이는 것을 주장해야 한다는 강박.">> (이하 인용 <<>>표시)

동의한다. 제발 하겠다고 한 거나 잘 했으면. 정책 좀 이슈메이킹 불쏘시개로 갖다 쓰고 버리는 짓 좀 그만했으면.

그리고 이 외에는 의문이다.


1. 한국에서 기본소득 논의가 다른 복지정책 도입을 방해하는가?

조성주 씨는 기본소득보다 사회안전망의 획기적인 강화, 노동시장 내의 불평등의 완화, 복지체제의 확충 등이 더 시급하기 때문에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납득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이와 유사한 주장을 접할 때마다 나는 다음의 의문이 든다.
한국의 복지담론 지형에서, 기본소득이 다른 복지정책을 위협하는가?
핀란드에서, 기본소득은 기존의 사회보험 체제를 대체할 수 있다. 실리콘밸리가 주도하는 미국의 기본소득은 신자유주의적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공급자 중심으로 설계되어 복지정책의 양적 수준이 턱 없이 떨어지는 한국에서, 기본소득이 다른 복지정책을 위협하는가?

나는 한국에서 기본소득의 가장 큰 효과는 공공부조의 획기적인 확대와 정규직 비정규직 간 소득격차 및 사회안전망 격차의 완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회안전망이라는 개념에 대한 찬반을 구하지 않고 사회안전판을 구성하는 좋은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런 낙관적 가능성으로 인해, 여타 "시급한" 복지정책이 도입 될 순서(?)를 새치기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음 글쎄. 북유럽 '강소국가'가 참여정부에 의해 롤 모델로 상정되고 복지국가 담론이 개진된 지도 어언 10년이고, 무상(보편)급식 논의 이후 복지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되었지만, 획기적인 강화와 확충은 없었다. 증세에 대한 논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순서는 증세가 우선이라고 생각된다.

현 시점에서 나는 기본소득이 증세논의의 트리거로서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모두에게 40만원? 5,000만명이면 1년 재원 240조? 계산이 쉽다. 기초노령연금이나 누리과정처럼 모른 척 넘어갈래야 못 넘어간다. 김종인 같은 정치인이 기본소득 얘기를 해서 반가운 거 딱 하나다. 그 정도 권력자에겐 증세의 책임도 끝까지 물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애초에 기본소득이 국가 주체의 공공서비스 및 복지를 현금 지급으로 대체함으로서 시장을 강화한다는 사고는, "정부"와 "시장"이라는 주체 중심의 사고라고 생각하는데, 복지 영역에서 한국정부는 적게 지급하면서 (시민을) 많이 통제하는, 서구중심의 이론으로 보면 기이한, 그러나 우리에겐 매우 친숙한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꼭 그런 사고틀이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즉, 한국에서 공공서비스와 복지정책이 강화될 경우 그만큼 시민을 보호하는 동시에 통제하는 프로그램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적 상황을 인정한다면 "기본소득"처럼 국가가 시민에게 충분히 지급하면서 시민을 적게 통제하는 정책은 "공공을 시장화"하는 것과 또 다른 효과를 가진다. 이런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국가, 시장 혹은 노, 사, 정 구조에 대한 메타포 외에 정책이 "현장"에 적용될 때 개인, 조직, 지역, 시장, 국가에서 어떻게 작동할 것인가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인데, 경험 상 (특정 부류의) 사회과학을 공부한 사람들이 이를 더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2. "하고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고민이 낭만적인 고민인가?

<<4.13총선 당시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정당들의 비례대표 후보들과 한 토론회에 나간적이 있다. 상호질문 시간이었는데 한 진보정당의 후보가 내가 주장하는 특수고용직 및 실업자까지 포함하는 고용보험의 획기적인 확대 등을 두고 '선별적 복지'를 주장하고 기본소득과 같은 보편적 복지를 반대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솔직히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었다. " 사람들에게 <실업>이란 것은 '꿈을 키우며 살고 싶어요', '하고싶은 것을 하며 사는 것' 따위로 이야기 될 만큼 낭만적이지도 않다! 그래서 실업에 대한 대책도 결코 아름답거나 예쁘지 않다!!"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지만 꾹 참았다. "한 정당의 대표로 토론회에 나온 상대 후보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차리는 것은 그 정당을 지지하는 시민들에 대한 예의다"라고 한 한 후배의 말이 머리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후배 때문에 정치하면서 조만간 화병이 날 것만 같다.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실업안전망의 확대를 주장하면 선별복지가 되는 것인가? 누구에게나 조건없이 '현금'으로 주는 것이 '보편적 복지'라는 것인가? 아직 진보진영의 복지관련 논의가 고작 이정도 수준에 머물러있다. 아니 돌아보면 선별복지/보편복지라는 프레임 자체가 진보의 실책이었는지도 모른다. ">>

이 부분에 등장하는 '선별적 복지'라는 워딩은 내가 봐도 별로 적절치 않다. 몇 가지 변호할 거리가 좀 있긴 한데 각설하고, 실업문제랑 일에서의 자아실현의 문제가 왜 충돌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기본소득을 얘기하면서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지도 모르겠다. 서로서로 별 관련성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실업 문제는 심각하다. 자기돌봄 없는 노동환경도 심각하다. 무식하게 구분하면 전자는 경제적 문제고 후자는 문화적 문제다. 이 둘의 해결 방법은 별개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어야 할텐데, 아예 관련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다. 공급과잉의 노동시장에서 하고싶은 일을 찾아 직장을 때려치기의 리스크가 크다고 하기는 힘드니까.

그런데 왜 이 두 문제가 충돌하지? 차라리 상호보완적이지 않나? 억지로 끼워맞춰 보건대, "해고는 살인"인 구조조정 현장의 노동자들, 하청업체 파견직 노동자들과 "하고싶은 것을 하며 살고 싶어요"라고 폼재며 일을 때려치는 3%의 대기업 정규직이라는 이미지로 "현장"(당사자라는 단어로 대체 가능할 듯)을 구분하고 계시나? 전자의 냉혹한 현실은 모르면서 "꿈"이라는 한가한 얘기나 한다고? "실업안전망 확충"보다 "기본소득"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고? 분연히 화를 참으신 걸까?

'생존'과 '자아실현' 중 뭐가 중요하냐고 하면 아무래도 전자인데, 그렇다고 후자는 감히 전자와 나란히 논의되어서는 안되는 건가 하면 좀 애매하다. 그리고 애초에 남의 티끌만한 고통이라도 "낭만적"인 것 취급해도 되는 것인지? 생각은 자유지만 말로 뱉은 이상 비난을 피해가기 어려워 보인다. 일을 하면서 "갑질"을 요구받는 게 너무 괴로워서, 조직문화가 힘들어서, 야근 때문에 매일 울고, 면역체계가 망가져서 여기저기 아프고,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만났다. 그럼에도, 대안이 없고 불안하기 때문에 그런 일을 지속한다. 이 문제는 "현장"이 아닌가?

그리고 기본소득은 말할 것도 없이 실업의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정책이기도 하다. 기본소득 지지자들로부터 "꿈"처럼 "아름답고 예쁜"(나는 이 한정사가 어느 정도 "윤리적으로 옳은"으로 등치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마음에는 든다. 역설법의 용법으로 쓰는 건 이해가 안가지만) 욕망이 생존, 노동권과 같은 당위보다 먼저 나온 것은 이에 대한 욕망이 "현장"에 많기 때문이고, 그것이 정치적 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아실현에 대한 바람으로 실업안전장치를 사회에 도입시킬 수 있다면 좋은 일 아닌가? 왜 이것이 낭만적이고, 나이브한 고민이라고 이상하게 폄하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사족 - 개인적으로 기본소득을 지지하게 된 요인을 모처럼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전교조 교사인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그래서 사회적 약자를 위해 행동해야 할 시민의 의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했다.(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란 친구가 북한을 미워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학부생 시절 죄책감 반 책임감 반으로 이런 저런 투쟁현장에 뜨내기처럼 참여했지만 연대에 충분은 없었고, 공권력의 폭력 앞에 무력감을 느꼈고, 당사자들에게 죄송스러울 뿐이었다. 내가 그들을 위해, 그들을 대변하는 무엇이 되는 것도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자의식과잉이라 그런 게 맞지만 아무튼간 '내가 그가 아닌데, 어떻게 당신의 고통을 이해해?'가 중요한 윤리적 질문이었다. 기본소득은 이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했다. 나는 나의 처지에서 기본소득을 지지할 수 있고, 그는 그의 처지에서 기본소득을 지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기초생활수급자 분들과 대화했을 때 나는 내가 나를 위해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힘이 기초생활수급자의 노동할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걸 알았고 더불어 그들에게도 자기 자신만이 아는, 생존 이상의 다양한 욕구가 있다는 것에 공감할 수 있었다. 청년, 노인, 실업자, 노동자, 장애인, 비장애인, 여성, 부모, 자녀 etc 각자가 최선의 삶을 지향하며 기본소득에 합의할 수 있다. 뭐가 문제인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현장에서 "낮은 곳에 임한 나" 뽕에 취한 사람들도 너무 많이 봤다. 나 자신도 그렇게 될까봐 두려웠고 이 편이 내게는 훨씬 윤리적인 선택이었다.)



3. 복지국가는 "투박하고 재미없"으면 기본소득은 세련되고 재미있나?

<<정의당은 천호선 전 대표 시절에 '복지국가 선도정당', '비정규직 정당'이라는 당의 노선을 정립한 바 있다. 좀 투박하고 별로 세련되지도 또 급진적이거나 상상력을 자극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한국에서 진보정당의 노선은 여전히 저 두 슬로건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소 투박하고 재미없어도 된다. 우리가 대변해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일매일 그렇게 지루하고 투박하고 재미없게 살아가고 있다.>>

복지국가는 "투박하고 재미없"으면 기본소득은 세련되고 재미있나? 뭐 그렇다면 좋은 일이지만. 기본소득 활동 4년 하면서 진영을 가리지 않고 꾸준히 받는 멸시가 바로 이것이다. 뭐랄까. 팬시해보인다는? 심지어 기본소득 지지자들 안에서도 이런 종류의 멸시를 받는다. 주로 "힙스터"라는 비아냥을 자주 들었는데, 뭐... 정말로 딱히 할 말이 없다. 힙스터가 아니기도 하고... 힙스터가 욕도 아니고... 안 투박하고 안 재미없다는 데도 딱히 할 말이 없다... 대문자 진정성...안 아쉬워... 안 사요...

다만 내가 기본소득 강의 할 때 마다 꼭 하는 말은 "기본소득은 쉽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한 마디로 모두에게 조건없이 매달 돈을 준다는 단순한 아이디어이고, 사실 이것만 알면 다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지금 바로 이 논의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말. 모 선생님의 표현을 빌자면 이것은 전염성이 높은 아이디어이고, 그래서 국가개조, 정책설계 어쩌고보다 재미있을 수 있다. 그리고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는 이 재미에서부터 말 걸기를 시도해왔다. 효과적인 캠페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온 오프 상시 진행해 온 "내가 기본소득을 받는다면" 캠페인이 있다. 청소년은 저축을 하고, 엄마는 이혼하고, 알바노동자는 롯데리아를 그만둔다고 했는데, 사실 이런 것들은 가정해보기 전까지는 스스로도 잘 인지 못하는 욕망 아닌지. (특히 2번째) 재미있다.

하지만 좌파, 생태, 급진 언저리에서 재미를 고려하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기만 한 일은 아니다. 우리는 얼마 전 열린 국제대회에 독일 마인 그룬트아인코멘 프로젝트 담당자 아미라 예히아(http://h21.hani.co.kr/ar…/special/special_general/42038.html)를 초청하는 데도 그것이 재밌는 이벤트에 불과하지 않느냐는 이유로 수 차례 반대에 부딪혔다. 우리의 입장은 사실 재미있다기보단 진지하고 간단했는데, 기술을 적극 사용하는 방법론이 참조할만하고, 국가 차원, 지역 차원의 기본소득 실험이 중요한만큼 개인들을 대상으로 한 기본소득 실험도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아미라는 기대대로 다양한 사례를 이야기해주었고 한겨레에서 기사로 발행되어 많은 공감을 얻었다.



4. 그 외 이상한 인과관계를 전제하는 표현들에 대해.
- 사는 게 쉽고 생각이 없어서 "재미있고" 낙관적인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최악에 있다고 차악을 지지해야 할 필요가 없다.
- 단순한 게 꼭 오류가 많다고 할 수 없고, 지름길이 틀린 길이라고 할 수 없다. 점진적인 로드맵이 더 실현가능성 높은 경우가 많지만 이 경우에는 그냥 잘못된 시각화인 것 같다.
- 마지막으로 "투박함"과 "재미없음"은 당위와 아무 상관이 없고 그저 글쓴이의 미감이 좀 별로라는 것만 누설한다고 생각한다. 이 문장은 약간은 인신공격이지만... 취향 따위 뭐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실 거라 생각한다.


_
덕분에 좀 처럼 할 기회가 없던 내용을 담아 기본소득에 대해 긴 글을 썼다. 그리고 진보진영 내의 이러한 반대가 기본소득을 실현가능하도록 벼르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감사합니다. 일찍 자야하는데. 망원동 동경 커피 카페인 효과 최상급...

댓글 2개: